화폐적 상상력과 비트코인의 미래. 화폐는 허구다.' 비트코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 같지는 않고 인터넷 마일리지나 상품권 혹은 유행이 지나면 끝나버릴 장난 같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드의 다발이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이 어색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은 돈 같지 않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인간이 아무리 추상적인 생각에 익숙해도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현실이 꿈이 아니라고 확신하며 살아간다. 사연이 그러하니 비트코인을 믿으라는 말은 사랑이나 우정을 믿으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사랑과 우정의 실체를 믿느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래도 사랑 1을 우정 10과 교환하는 거래가 있다. 면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며 외면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진짜 돈이라고 생각하는 원화나 달러도 손으로 만수 있는 종잇조각으로 유통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통화량이고 야근으로 지친 직장인들에게는 시원한 맥주와 안주가 1주와 안주가 제공되는 돈을 받고 이에 걸맞은 이들이 친절한 미소로 나를 가벼운 술자리를 의미할 것이다. 어디를 가나 돈을 받고 이에 물건,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상인들이 친절한 미소 맞이해 준다. 그깟 종잇조각 따위에 귀한 물건과 수고로운 서비스를 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이런 현실이 믿음은 게 하고 종이돈을 종이로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이 순서를 바꿔도 말이 된다. 이런 믿음이 이런 현실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금과 은같이 그 자체가 가치를 갖는 금속 쪼가리가 화폐로 쓰일 당시에 상인들은 종잇조각과 자신의 물건을 교환해 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받아주는 데도 있었지만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월급이나 빚을 종이돈으로 받기보다는 금이나 은으로 받으려고 했다. 대중의 믿음이 부족하니 종이돈은요 통 되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종이돈을 믿지 않으면 종이돈은 실체를 잃어버리고 종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몇몇 선각자들은 돈의 본질은 돈을 무엇으로 만드느냐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다. 금이 가치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가지들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하니 금이 되었다. 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녹슬지 않는 금속이고 반 인다는 점이 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금은 탈 목 고 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열등한 금속이었다. 신용카드나 하면서 만 원짜리, 5만 원짜리를 직접 만지는 기회가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가고 있다. 예전에는 월급봉투라는 게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이. 월급봉투를 가져오는 날 저녁에는 뭐가 달라도 다른 반찬이 올라왔다. 새로운 반찬을 맛보며 월급의 실체를 느끼고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봉투가 없어졌으니 가장의 존재감이야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숫자들의 존재감은 크다. '그 숫자와 비트코인 지갑의 숫자는 다르다. 내가 인터넷으로 보는 내 계좌의 숫자는 허구가 아니다. 언제나 은행에 가면 빳빳한 종이돈으로 바꿀 수 있고 카드를 가지고 ATM에 가면 돈을 뽑을 수 있다. 엄연히 실체가 있단 말이다.' 맞다. 우리에게는 숫자에 불과한 계좌의 돈이 실제의 돈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실제로 돈으로 바꾸는 경우는 드물거나 없을지라도 그런 믿음을 공유하기 때문에 다른 은행이나 쇼핑몰이 나 다른 사람들도 그 전자적 코드를 돈으로 인정해 준다. 사실은 자도 이동하지는 않는다. 회사 계좌에서 내 계좌로 숫자가 이전되는 것은 아니고 회사 계좌의 수치가 줄어든 대신 내 계좌의 수치가 간의 거래를 매개하는 은행 장부의 변동일 뿐이다. 비트코인은 강했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잘못된 의심이다. 그러나 그 코드가 종이돈이나 쇠붙이로 그 액수만큼 교 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교환된다고 하더라도 가격의 변동이 심하다면 돈보다는 주식이나 채권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또 다른 질문이다. 그렇다면 신사임당이나 세종대왕이 그려진 5만 원권과 1만 원권은 왜 돈인가?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니까 비트코인과는 달리 실체를 가진 돈이다. 귀한 종이에 특이한 잉크로 인쇄한 종이돈을 ‘법화라 하고 영어로는 'Fiat money'라고 한다. 우리는 익숙하지만 찍어내는 종이돈에 대해 저항감을 가졌다. 종이돈을 찍어내기 시작하던 당시에는 금이나 은 혹은 동과 같은 금속조각이 돈으로 쓰였다. 당시 우리의 조상들이 종이돈을 믿지 않은 이유도 비트코인에 대한 우리의 의심과 비슷했다. 금이나 은처럼 보증되는 실체가 없다고 여겼다. 역사는 늘 새롭지만 비슷한데 그 이유는 인간의 속성과 사회의 본질이 변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유동성이란 신용이며 신용이란 빚이다. 비트코인은 빚에 기초한 번화 종이돈)에 대한 반작용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 이 달러를 대체하는 결제 시스템이 된다면 비트코인 역시 디플레이션 화폐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아이러니는 비트코인 진영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소리다. 인플레이션이나 정부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이 비트코인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종이돈 그 자체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이고 금융시스템이란 한 사회의 경제적 신뢰만이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신뢰만이 만들어질 수는 있지만 금융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 신뢰만의 주체들이 스스로 정부의 우산이 필요할 때가 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정부와 기존의 금융계가 비트코인을 흡수할 수도 있다. 어쨌건 비트코인이 주류의 위치나 그에 버금가는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비트코인의 속성은 제 금과는 많이 변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비트코인은 기존의 금융시스템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비트코인이 은행을 끼지 않는 송수 금 서비스라는 점을 자신의 논문에서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은행의 기능은 디지털 거래의 기술적 보증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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